자동 로그아웃 될 예정입니다

남은시간100

회원정보 보호를 위해 “15분동안 입력이 없으실 경우” 자동으로 로그아웃 됩니다.
로그인 시간을 연장하시려면 “로그인 연장하기” 버튼을 클릭하여 주십시오.

로그인 연장하기 로그아웃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원정보 보호를 위해 “15분동안 입력이 없어 자동으로 종료” 되었습니다.
다시 로그인 하시려면 아래의 “로그인” 버튼을 클릭하여 주십시오.

로그인

창신제3동주민센터우리동안내

홈페이지 담당
이예은 02-2148-5468

동명유래

창신동의 동명은 조선초부터 있었던 한성부의 방(坊) 가운데 인창방(仁昌坊)과 숭신방(崇信坊)의 글자를 따서 1914년 동명 개정 때 제정되었다. 이성계(李成桂)가 조선(朝鮮)을 개창하고 한성부의 행정관할 구역을 제정할 때부터 있어왔던 창신동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자연부락의 이름도 많다.

숭인동의 청룡사(靑龍寺)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은 자줏굴, 자주동(紫芝洞)이라 불렀다. 자줏굴 돌산 중턱에는 청룡정(靑龍亭)이 있었다. 이곳은 우대오터(누각동의 풍소정, 필운동의 등과정, 옥동의 등룡정, 삼청동의 운룡정, 사직동의 대송정)와 함께 유명한 활터 중 하나였다. 청룡정의 동쪽으로 동묘(東廟) 맞은 편에는 붕어우물이 있으므로 해서 부어정동([(魚+付) :붕어 부]魚井洞)이라 하였다.

붕어물굴, 붕어우물굴 혹은 줄여서 부정동([(魚+付) :붕어 부]魚井洞)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이 우물은 크고 물이 많은데 홍수가 나자 이 우물이 넘쳐 흐르고 부근의 개천에 있던 붕어가 우물 안으로 들어와 살았으므로 붕어가 사는 우물이라는 뜻이다. 1977년까지도 붕어우물이 있어 허드렛물로 사용했다. 자줏굴 뒷산은 돌로 되어 있으므로 돌산 혹은 석산(石山)이라 한다. 창신동의 전체지형이 그러하듯 산비탈에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의 지층이 암반이므로 기초공사를 깊게 하지 않아도 붕괴의 위험이 없다. 석산은 1960년대 초반까지 채석장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곳에서 채취된 석재는 전국 각지에서 으뜸으로 쳤다.

배성여자상업고등학교와 창신아파트가 있는 근방을 당현동(堂峴洞)이라 하는데 당고개가 있는 마을이므로 이름이 붙여졌다. 배성여자상업고등학교는 부락제를 지내던 도당(都堂)자리였고 도당이 있는 고개이므로 당고개라 하였다. 도당 아랫쪽에는 소경이 북을 치고 경(經)을 외우며 마을 사람들의 앞날에 대한 길흉(吉凶)을 점쳐주었으며 마을 제사가 있을 때는 따로 선정된 제관(祭官)과 함께 제사일정과 행사를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1968년 12월 3일 서민아파트 2,000동 건립계획 가운데 창신숭인지구 500평이 선정되었고 이듬해 1월 4일에는 창신동쪽 낙산지구에 시민아파트 30동의 기공식이 있었으며 동년 3월 1일에는 이 일대에 대한 아파트 건설을 위해 무허가 건물의 철거가 있었다.

현재의 창신3동은 동쪽에 숭인1동, 서쪽에 창신2동, 남쪽에 창신1동, 북쪽에 성북구 보문동에 둘러 쌓여있다.

/dong/2014/open_content/16/05/02/01/0502010101.jsp